첫문장


훗날, 대극장을 설계한 건축가에 의해 처음 그 존재가 알려져 세상에 흔히 '붉은 벽돌의 여왕'으로 소개된 그 여자 벽돌공의 이름은 춘희(春姬)이다. 전쟁이 끝나가던 해 겨울, 그녀는 한 거지 여자에 의해 마구간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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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금복이 여느때처럼 시장에 나가 물고기의 배를 따고 있을 때였다. 시장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한꺼번에 부두로 몰려가고 있었다. 금복도 호기심에 사람들을 따라가보니 구경꾼들로 잔뜩 둘러싸인 부두 한가운데에서 뭔가 작업이 진행중이었다. 구경꾼을 헤치고 안을 들여다보던 금복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 안에선 사내들이 칼을 들고 어마어마하게 큰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그 물고기는 언젠가 그녀가 바닷가에서 보았던 바로 그 대왕고래였다. 사내들이 작두만한 칼로 거침없이 고래의 배를 썩썩 가르자 피와 내장이 폭포수처럼 쏟아져내렸다. 거기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구경꾼들은 이리저리 몸을 피해야했다. 뒤이어 볏가마니보다 더 큰 밥통 안에서 닻과 돛, 낡은 그물과 뒤엉킨 낚싯줄 같은 어구들과 배에서 떨어져나온 것이 분명한 나뭇조각, 여러 종유의 해초들과 작은 물고기들이 쏟아져나왔다. 사람들은 물건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탄성을 질러댔지만 금복은 왠지 자신의 살을 베어내는 것처럼 마음이 쓰라렸다. 영원히 죽지 않을 것 같던 거대한 생명체가 그렇게 덧없이 고깃덩어리로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며 사람들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내장을 다 드러낸 채 해체되어가는 고래의 처지가 마치 걱정과 자신의 처지처럼 여겨져 저도 모르게 설움이 북받쳐올랐다. 그녀는 애써 울음을 삼키느라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구경꾼들 틈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 주저앉아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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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희에게 금복은 영원히 가 닿을 수 없는 신기루와도 같았으며, 춘희의 바람은 끝내 채워질 수 없는 허기와도 같았다. 그래서 그것은 결국 그녀를 평생 따라다닐 아득한 그리움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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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복의 눈엔 수련이 하는 짓 모두가 애교요, 재치요, 매력이었다. 그것은 사랑의 법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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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불과 물로 빚어낸 벽돌은 공간을 가르고 비바람을 막아줄 뿐만 아니라 온기를 보존하고 공기를 정화해주는 훌륭한 건축자재였지만 그런 실용적인 쓰임새는 춘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녀에게 벽돌은 떠나간 사람들을 향한 비밀스런 신호이자 잃어버린 과거를 불러오는 영험한 주술이었던 것이다.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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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어떻게 되는 거지?
우린 사라지는거야, 영원히.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 네가 나를 기억했듯이 누군가 너를 기억한다면 그것은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춘희는 뭔가 더 질문을 하려고 했지만 미처 입을 뗄 사이도 없이 둘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져 광대한 성간에는 희미한 목소리만 남게 되었다.

꼬마 아가씨, 안녕.

코끼리, 너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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