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by 정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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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문장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
2004년 9월 12일 새벽은 내가 아버지 편에 서 있었던 마지막 시간이었다. 그땐 아무것도 몰랐다. 아버지가 체포됐다는 사실도, 어머니의 죽음도, 밤사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막연하고도 어렴풋한 불안을 느꼈을 뿐이다. 아저씨의 손을 잡고 두 시간여 숨어 있던 세령목장 축사를 나선 후에야, 뭔가 잘못됐다는 확신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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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떠돌이가 됐고 주거지는 대개 항구도시였다. 아저씨는 내게 본격적으로 다이빙을 가르쳤다. 바다는 내게 자유를 주었다. 해저의 어둠 속에 가만히 몸을 옹크리면 세상이 한숨에 사라졌다. 그곳은 누구의 손도 닿지 않고, 누구의 눈길도 미치지 않고, 누구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 세상의 절대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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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야."
아저씨는 비키니옷장에서 내복과 드라이슈트(동계용 잠수복)를 꺼냈다.
"셋은 찾았는데, 카메라를 든 아이가 없다는 거야."
'그런데 아저씨가 왜 가요?'라고 묻고 싶었다. 잠수장비를 감춰버리고 싶었다. 아저씨가 아무 일도 하지 않기를 바랐다. '뭔가를 한다'는 '뭔가를 잃는다'와 같은 말이었다. 가까스로 얻은 것, 불안하게 지켜온 것, 막 꾸기 시작한 내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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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는 멀리 평야와 하늘이 맞닿은 곳을 가리켰다. 저 아득한 지평선 너머에 '득량만'이라는 바다가 있다고 했다. 남풍이 올라오는 밤에, 창문을 열고 숨을 마셔보라고 했다. 바다냄새가 내 안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했다. 나는 밤마다 창을 열고 남풍을 기다렸다. 밤마다 내 안으로 들어온 건 그 아이의 목소리였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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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원의 눈에 반달 같은 미소가 번졌다. 애정과 믿음이 담긴 눈웃음이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표정이었다. 초라한 삶을 견디게 하는 달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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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한 방에 끌려 올라왔으나 적절한 순간에 멈출 수가 없었다. 끌려 올라온 여파로 반원을 그리며 미끄러지던 차는 길가에 서 있던 은주를 덮쳤다. 한순간, 은주는 현실감을 잃었다. 꼼짝하지 않고 서서 남편이 자신과 차 사이로 끼어드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가 멈췄을 때, 남편은 길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남편은 허벅지 근육파열로 그해 스프링 캠프에 합류하지 못했다. 다리로 차를 세운 대가치고는 가벼운 상처였으나 1군 발탁을 약속받은 2군 선수에겐 치명적인 부상이었다. 보상으로 그는 아내를 지키고 아들을 얻었다. 부자가 첫 대면하던 장면은 아직도 그녀에게 강건하고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변기뚜껑 같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아이의 손가락 끝을 건드리던 남편의 모습이, 행복과 두려움과 불안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중얼대던 그의 혼잣말이. "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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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이가 어떻게 자랐는지 상상하는 게 가장 즐거워. 그 아이 생일마다 승환 씨가 보내준 사진을 벽에 쭉 붙여놨거든. 보면 볼수록 신기해. 열다섯 살까지 소년이다가 열여섯 살에서 청년으로 훌쩍 뛰어오르는거. 내내 아이 곁에 있었따면 난 아마 그 마술 같은 점프를 못 봤을 거야. 지금도 생생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그 아이 모습이. 강당에 모인 아이들 수백 명 중에서 우리 서원이만큼 품위 있는 아이는 없었어. 내가 얼마나 자부심을 느꼈는지, 훗날 그 아이가 남자가 되면 꼭 얘기해주겠다고……"
정신없이 파일을 껐다. 손끝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잊으려 안간 힘을 써온 목소리였다. 정말로 잊은 목소리였나 보았다. 한참을 듣고서야 그가 누군지 알아차렸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휴대전화 속에서 "서원아"하고 부르던 음성이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마지막 목소리였으니까.
노트북도 껐다. 다시는 그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소설도 읽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저지른 짓을 확인하는 게 너무나 괴로워서, 라고 말하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나를 괴롭힌 건 아버지 그 자체였다. 그는 내가 기억하는 거인이 아니었다. 어리석고 나약한 겁쟁이었다. 그 왜소하고 볼품없는 남자와 대면하는 게 싫었다. 최현수라는 사내의 초라한 인생에 숨이 막혔다. 그러나 파일을 닫아도, 노트북을 꺼도, 그 남자의 목소리는 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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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했어, 우리 서원이, 잘 견뎠어."
서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뿐이었다. 정상적으로 보여야 할 반응이 없었다. 울거나, 비명을 지르거나, 최소한 흐느끼기라도 해야 했다. 뒤늦은 쇼크가 온 것처럼 몸을 뻣뻣하게 굳히고 침묵했다. 승환은 갑갑했다. 어떤 식으로든 지금 터트려야 했다. 그러지 못한다면, 서원은 홀로 견딘 공포와 고통을 영원히 끌어안게 될지도 몰랐다. 세령호는 서원의 우물이 될 터였다. 제 아빠의 것보다 더 어둡고, 싶고, 힘센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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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은, 며칠 전에 여기 있는 사형수들 모두 건강검진을 받았네. 풍문으로 듣자하니 석 달 후라더군. 정말로 집행된다면 나일 거라고 생각하네. 나였으면 좋겠네. 서원이? 우리 서원이…… 작별인사를 할 수 있다면…… 자네가 간직했다 전해주겠나. 이가 없어서 잘 될지 모르겠네만."
아버지는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보귀대령의 행진곡이었다. 나는 책상에 이마를 대고 엎으렸다. 양팔 사이에 귀를 묻고, 질끈 눈을 감고, 휘파람이 끌고 온 것들을 모질게 밀쳐냈다. 아버지와 나, 꿈결 속 삽화 같은 우리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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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내일 프랑스를 떠날 예정입니다. 이번엔 체류연장을 위한 짧은 여행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혼자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여전히 두렵지만 해볼 참입니다. 등짝에 붙은 그림자를 없애고 나면 제게 무엇이 남는지 보고 싶습니다. 어디로 갈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곳으로는 돌아오지 않을 생각입니다.
햇살이 맑은 날입니다. 저는 지금부터 마당에 내려가 볼 참입니다. 일광욕 의자에 널어둔 이불도 걷을 겸, 결혼식 피로연에 쓸 파이를 잔뜩 굽게 해주었던 사과나무를 마지막으로 돌아볼 겸해서요.
11월 1일, 문하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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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문장


0시. 심연에 닿았다. 시야는 어두웠고 사물은 무채색을 띠었다. 잿빛 고기 떼는 머구름처럼 머리 위를 가렸다. 나는 철어렁이에서 유골상자를 꺼냈다. 종아리에 찬 나이프로 상자를 봉한 고무줄을 끊고 뚜껑을 열었다. 하얀 포말이 고기 떼 사이로 뭉클, 피어올랐다가 조류를 타고 흩어져갔다. 마치 눈보라가 날리는 듯한 형상이었다.
44년 전 오늘, 남자가 태어나던 날에도 눈이 내렸다고 했다. 13년 전 오늘도 눈이 내렸던 걸로 기억한다. 남자의 어깨와 세상이 모두 부서진 그해 겨울, 세 번째 어깨수술을 받으려고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서른한 번째 생일에, 환자복 위에 파카를 걸치고 간호사 몰래 병원을 빠져나온 오후에, 남자는 여섯 살 난 아들과 놀이공원에 갔다. 동물원은 문을 닫았고, 사파리 기차는 플랫폼에 정차해 있었고, 어쩔 줄 몰라 하던 남자는 아들에게 얼음이 든 자판기 콜라를 뽑아주었고, 그때 하늘은 사막처럼 노랬고, 납빛 구름 아래로 눈바람이 불었고, 가로수들은 비올라처럼 울었고, 아들은 노천 게임기에서 뽑은 웃는 해골을 남자에게 내밀었다. 남자는 해골을 받아 쥐고 휘익, 휘파람을 불었다. 황량한 광장에는 남자가 부는 보귀대령의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아들은 팔을 크게 흔들며 남자를 따라 행진을 시작했다. 빠밤, 빠바바 빱빱빱. 빠밤……

 

그날처럼, 웃는 해골을 내밀던 여섯 살 오후처럼, 나는 아버지에게 축하 인사를 보냈다.
"해피 버스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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